강민석

학교가 가르쳐야 하는 것

악몽

난 학교가 배경인 악몽을 꾼다. 보통 꿈을 꾸어도 한 두시간 뒤면 까먹지만 내가 학생으로 나오는 꿈은 다르다.

꿈에서 나는 학점이나 시험을 망칠 거라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다음 날 있을 중요한 시험을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고, 신청했던 수업에 단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다는 걸 학기 말이 되어서야 알아차리기도 한다.

다른 상황, 같은 주제로 꿈은 반복된다. 학교에 다닌 지 5년이 넘었지만 내 잠재의식은 아직 학교에 머무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러니하지만 학교가 나에게 남긴 가장 큰 흔적은 지식이 아닌 이 악몽이다.

학교가 가르쳐야 하는 것

한국, 중국,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며 다양한 환경을 경험했지만 어디서나 교육의 중심에는 시험과 경쟁이 있었다. 학생을 위한 교육 제도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점수가 학생들 사이 계급을 나누고 미래를 결정한다는 ‘진리’는 너무나 당연했다.

학교에 투자한 16년 후 나에게 남은 건 수동적인 사고방식과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값비싼 졸업장이었다. 교육이 진정 나를 위해 존재했다면 삶의 의미 정도는 스스로 정립할 수 있어야 했지만 정해진 룰이 사라지고 남은 건 혼란뿐이었다.

학교는 불안이 아닌 배움을 상징해야 한다. 고정된 룰에 순응하고 적응해야 ‘좋은 학생’으로 인정받는 게임은 교육이 아닌 세뇌다. 학교가 둥지라면 떠날 때 힘차게 날아갈 수 있어야 한다. 당연하지만 학교는 인간이 자립할 때 실제로 도움이 될 지식과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

문제해결능력

일회성 시험을 대비하며 외운 지식은 대부분 사라진다. 반대로 문제를 해결하며 부가 가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얻는 배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배움이 우선인 학교는 학생이 0에서 1을 만드는 경험을 반복할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수업에서 혼자 주스 10병을 팔아보라는 과제를 줄 수 있다. 이 문제에 채점이나 평가는 없어야 한다.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열린 질문만 건네주면 된다. 어떤 주스를 팔 건지, 판매 장소는 어디가 좋을지, 가격은 어떤 기준으로 정할지. 주스 10병 정도는 쉽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판매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내려야 하는 선택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교육은 안티프래질한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야말로 삶에 필요한 슈퍼파워다. 학교는 과잉보호를 위한 시설이 아니다. 모의 투자, 모의 창업도 부족하다. 쓰라린 실패는 미리 겪을수록 좋다.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학생들이 실전에서 만들고 협력하여 판매까지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과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연봉이 아닌 지분이 부를 의미하는 시대다. 누구나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원하지만 학교는 금융 지식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 같은 경우 초등학생 시절 숙제로 통장을 만들어 본 것이 전부다 (대학에서도 경제 수업을 듣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금융과 자산에 관한 책을 읽다 보니 이토록 중요한 내용을 왜 미리 배우지 못했을까 아쉬웠다.

학생에게 ‘돈 쉽게 버는 법’을 가르치라는 게 아니다. 부는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어떤 기준과 가치관으로 돈을 관리해야 하는지, 투자에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 정부 정책과 제도는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돈을 알아야 사회를 이해하고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다.

금융 지식은 과소비사기와 같은 위험을 방지한다. 게다가 돈을 모으고 관리하는 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학교가 경제 구조나 부동산/주식 시장을 가르치면 안 될 이유가 없다.

프로그래밍

무조건 코딩을 배워야 한다며 수업을 강요하는 건 올바른 교육은 아니다. 학생이 코딩을 또 하나의 과목으로 접근한다면 ‘코딩은 어렵고 재미없어’라는 결론만 얻게 될 수 있다. 학교에서 영어를 10년 배운 학생이 영어로 어떻게 대화할지 모르는 것과 같다.

학교는 코딩을 가르치기 전 학생들이 일상에서 코드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틱톡 알고리즘은 어떻게 학습하는지,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이 어떻게 하루 만에 도착하는지, 비트코인의 원리는 무엇인지, 자동화 시대에 어떤 직업이 사라지고 생기는지. 소프트웨어가 가진 영향력을 주제로 토론하며 학생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코딩 수업이 해야 할 주요한 역할이다.

이미 코딩을 공부해서 활동하는 중/고등학생 개발자들이 있다. 컴퓨터가 너무나 익숙한 학생들이 프로그래밍을 쉽게 습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코드로 만드는 재미를 느낀다면 배울 수 있는 곳은 인터넷에 얼마든지 있다. 어른들이 끼어들어 주입식 교육을 들이대서는 안 된다.

건강

학교는 학생이 건강을 지키는 선택을 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식품을 고를 때면 뒷면에 적힌 재료나 영양성분표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 어떤 운동을 하는 게 좋은지도 알고 있어야 한다. 건강을 유지하는 능력은 배워야 할 기술이다.

정신적 건강 또한 중요하다. 외로움과 무기력함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어떻게 감정을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지. 나는 이런 고민을 학교를 떠나고 나서야 진지하게 할 수 있었다. 만약 학생 시절부터 내 몸과 마음을 이해하는 데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다면 분명 지금의 나는 더 건강할 거다.

학교는 식단, 운동, 수면과 같은 요인이 건강에 주는 영향을 가르치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건강한 습관을 가지도록 격려해야 한다. 음식을 먹을 때 영양분을 고려하며 먹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적 수면 온도인 18도를 지키는 사람 또한 보기 힘들다. 지식이 있어도 건강한 습관을 유지해본 경험이 없다면 작심삼일로 끝나기 쉽다.

학교는 정말 필요할까?

나는 초등학생 때 장래 희망을 의사라 적었지만 의사가 하는 일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저 어른들에게 ‘좋은 학생’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사고방식은 비슷했다. 대학교 지원 원서에 쓰이면 좋게 보일 것 같은 수업이나 동아리 활동에 참여했다. 성적이 잘 안 나오면 자신을 한심하게 여겼고, 누군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면 질투하기도 했다. 학교를 떠나면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지. 내가 진짜 원하는 미래가 무엇인지는 고민하지 못했다.

나는 학교를 떠난 후부터 더 큰 배움을 얻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원해서 읽는 책은 그 어떤 수업보다 보람 있었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원하는 사업을 만들어 가며 겪는 성장은 수없이 반복했던 시험 준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다행히도 내 배움은 학교에서 멈추지 않았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 어린 강민석을 만날 수 있다면 학교를 때려치워도 좋다는 말을 멱살 잡고 꼭 전할 거다. ‘이미 교육은 무료가 됐고대학은 망해가며학력이 아닌 능력이 존중받는 세상이다 민석아. 불공정한 입시에 매달려서 시간과 돈 낭비하지 말고 네 갈 길 스스로 정해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