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suk Kang

죶됐다 싶을 때가 있다

완전히 죶되어버렸다 싶을 때가 있다. 고등학생 시절 짝사랑하던 친구와 페이스북에서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있었던 일이다. 이 친구는 페이스북 설정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물어봤고, 나는 “You should first click the x“라고 말하려고 했다(그녀가 미국인이기 때문에 영어로 대화했다). 그런데 나는 “You should first click that sex”라고 메시지를 보내버린 것이다. 아 미친 순간 당황해서 으악 비명을 지르며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무한 복사해서 보냈다. 이 친구는 괜찮다고 했지만 이 사건 이후로 나는 다시 연락하지 못했다.

내 무의식은 왜 x가 아닌 sex를 타이핑했을까. 성욕에 잠식된 내 정신 상태를 탓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사건 이후 약 3년이 흘렀고, 이 친구는 남사친과 한국에 왔다. 잊고 지냈던 인연인데 먼저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줘서 기뻤다. 같이 여행하는 사람은 남자친구인가...? 싶었지만 둘은 그냥 친구라고 강조하길래 알았다고 했다. 그냥 친구와 아시아 여행을 한다니. 알고 보니 그녀의 인스타그램에는 수염 범벅인 빨간 머리 백인 남자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나와 너무나도 다르게 생긴 남자 친구 사진을 보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튼 우리 셋은 서래마을에서 만나 빙수를 먹었다. 두 사람은 전통 팥빙수와 수정과 빙수를 골랐다. 나는 솔직히 수정과보다는 딸기가 먹고 싶었으나, 관광객들 입맛에 맞춰야지 싶었다. 대화는 유쾌했다. 내 영어 실력이 나아져서 그런지 고딩 때보다 훨씬 더 편안했다. 페북 메시지 사건이 떠올랐지만, 굳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내가 옛날에 너 좋아했잖아라고 쓱 말해볼까 하는 당찬 생각도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두 관광객은 수정과 맛이 너무 익숙하지 않아서 먹기 힘들다고 했고, 수정과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 한국인인 나는 두 사람을 대신해서 잔반 처리를 했다.

산다는 건 이불킥 모먼트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넘어지면서 굴러가다 보면 죽을 시간이 된다. 죶됐다 싶어도 결국 삶은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장이 민감하여 똥을 잘 참지 못하는 나는 잘 알고 있다. 당장 쌀 것만 같아도 화장실에 갈 때까지 참게 된다는 점. 주변에 화장실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마법과 같이 변기가 나를 구원해 주리라는 것. 반쯤 싼 것만 같아도 알고 보면 팬티가 깨끗하다는 점. 변기에 앉으면서 느끼는 황홀한 안심감이야말로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점.

인생 즐기는 네가 챔피언이라는 말이 맞다. 아빠가 너무 진지하게 살지 말고, 많이 웃으라고 해준 말도 맞다. 씨게 죶돼도 웃어야 일류다. 세상이 죽고 죽여도 사랑을 품고 내일을 맞이하자. 그러면 어느 순간 이렇게 허무맹랑한 글을 쓸 날이 온다.

#한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