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석

죽음을 대비하는 실용적인 가이드

인생에서 가장 심오한 경험은 출생과 죽음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죽음에 대해 더 많이 대화하며 준비하지 않을까? - BJ Miller, Shoshana Berger

오늘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면 어떨까. 얼마 남지 않은 숨을 쉬면서도 걱정할 것 같다. 사랑하는 아내, 가족, 친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아직 많은데. 그들이 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남은 사람이 내 흔적을 정리하느라 고생하지 않을까. 나는 과연 후회 없는 삶을 살았을까.

그 누구도 죽음을 예측할 수 없지만 누구나 대비할 수는 있다. 내가 떠나도 남겨질 사람을 위해서라도. 삶이 충분한 기회를 줄 때 원하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정리

옷, 책, 돈. 인간은 죽고 물건을 남긴다. 평소 정돈되지 않은 삶을 살았다면 뒤처리는 온전히 유가족 몫이다. 죽음을 대비하고 싶다면 집부터 정리해야 한다. 필요하지 않은 건 과감히 버리거나 나누고 쓰임이 분명하거나 가치가 확실한 물건만 남겨야 한다. 특정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물건이 있다면 미리 기록해두는 것도 좋다.

물건뿐 아니라 자산이나 온라인 계정도 정리가 필요하다. 내가 가진 보험은 어떤 보장을 해주는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어디에 투자했는지, 구독하고 있는 온라인 서비스는 무엇인지. 나를 제외하고 아무도 알지 못한다면 추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죽음을 대비한다면 이러한 정보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

  • 보험증권을 한곳에 모아놨다.
  • 투자 내용과 현황을 정리한 구글 시트를 아내와 공유했다.
  • 1Password(비밀번호 매니저)에 모든 계정 정보를 저장하고 1Password 로그인 방법을 시트에 추가했다.
  • 내가 구독하고 있는 서비스 목록과 구독료 또한 위에 언급한 시트에 기록하여 내가 없는 상황에도 간편하게 취소할 수 있게 했다.
  • 의미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물건 리스트를 시트에 추가했다. 내가 죽었을 때 해당 물건을 전하고 싶은 사람 또한 적었다.
  • 현금이 있는 계좌 수를 최소화했다. 내가 죽었을 때 은행 업무가 최대한 적도록 했다.

죽음을 생각하며 정리에 몰두하면 여러 교훈을 얻는다. 나에게 정말 의미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앞으로 물건을 살 때 얼마나 신중해야 할지. 내가 사라져도 아꼈던 물건만큼은 또다시 쓰일 수 있도록 고민하는 과정에서 대인관계를 되짚어 보기도 한다.

관계

화려하고 거창한 장례식은 의미가 없다. 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진심으로 내 가족을 위로하고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죽었을 때 필요한 건 팔로워 100만 명이 아닌 진정한 친구 한 명이다.

내가 소중한 관계를 위해 충분한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고 있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기회가 있을 때 가족과 친구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솔직하게 표현하자. 아끼는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할 때는 고민하지 말고 일단 뛰어가자. 남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사랑과 희생을 기대할 수는 없다.

관계야말로 가장 중요한 보험이다.

유언

아빠는 유언을 남기지 못했다. 나는 아빠가 남긴 정신적 유산이 사라질까 두렵다. 아빠는 무엇을 꿈꾸며 어떻게 자랐는지, 아빠 주변에는 어떤 좋은 사람들이 있었는지, 내가 어떻게 살아가길 바랐는지. 아빠가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는 알 방법이 없다.

그래도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10가지 질문이 담긴 설문지를 보낸 적이 있다. 살면서 가장 행복하던 순간,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남기고 싶은 말 등 여러 질문에 아빠가 답한 글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아빠가 “후회 없는 삶을 살아왔네요"라고 짧게 남긴 글은 큰 위로가 됐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미리 적어보는 건 어떨까. 내가 가족, 친구, 세상에 남기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행복과 슬픔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지. 나누고 싶은 교훈과 철학이 있는지. 병상이 아닌 책상에서 유언을 써보는 거다.

언젠가 죽는다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만약 어떠한 예고 없이 갑자기 죽게 된다면 남겨진 사람은 후회와 아쉬움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은 죽는 중이다. 마지막 기회라 느꼈다면 이미 늦다. 지금이 유서 쓰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

건강

병원은 사람이 아닌 질병을 위해 존재한다. BJ Miller

나는 마지막 순간이 평화롭기를 바란다. 몸을 진통제, 항생제, 영양제로 채우고 병실 침대에 누워 삶을 유지하고 싶지는 않다. 충분히 대비한 상태로 다가올 죽음을 있는 그대로 환영하고 싶다.

모든 질병을 예방할 수는 없지만 건강은 의지로 이룰 수 있다. 건강해지는 법은 어렵지만 간단하다. 매일 운동하고 잠 잘 자고 자연식하면 된다. 운동과 식단만큼 수익률이 확실한 종목은 없다. 건강 수명을 늘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병원이 아닌 집에서 건강하게 죽는 걸 목표로 노력하자.

습관

꾸준한 시간 투자 없이 정돈된 환경, 진실한 관계, 건강한 몸을 가꿀 수는 없다. 마지막 순간, 불안한 마음을 덜어내고 편안해질 수 있도록. 매일 조금씩 죽음에 다가가는 과정에 참여하는 건 어떨까. 죽음이라는 파도에 휩쓸릴 때 나를 지켜줄 뗏목 하나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차분히 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