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워홀 막차

겨울이 오고 떠날 시간이 됐다.

내가 후쿠오카로 떠난다고 말했을 때, 할머니는 “왜 하필 일본이냐”고 말했다. 그러게, 다른 곳도 있는데 왜 일본이었을까. 만 29살이 될 때까지 한 번도 해외를 나가보지 못했던 내가 그나마 친근하게 느꼈던 나라여서 그랬나 보다.

어릴 적 집에 혼자 있으면 컴퓨터로 애니메이션을 봤다. 원피스, 케로로, 풀 메탈 패닉!, 데스노트. 닥치는 대로 애니메이션만 보며 시간을 때웠다. 외국어 공부는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더니. 스바라시 데쓰네. 나는 어느 정도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아니메 키드가 되어 있었고, 언젠가 일본에서 니혼고 실력을 시험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만 했다.

대학교 졸업에만 7년을 투자했다. 휴학 1년, 군대 2년. 3년 동안 자격증 공부든 대학원 준비든 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외쳤지만 결국 내 청춘은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그렇게 ‘중앙일보 대학평가 30위 학교 출신 취업 준비생’이 되었을 때야 덜컥 겁이 났다. 집 앞 천변에 출몰하는 철새도 일본에서 날아왔다던데. 내 의지로는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내가 한심해서 가슴이 답답했다.

졸업생이 아닌 취업준비생으로서 침대에 누워 인스타를 보는데, 중학교 친구의 사진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보지도 못했는데 수백 번은 본 것만 같은 오사카 글리코 간판 앞에서 찍은 사진. 그 어이없도록 판에 박힌 사진을 뚫어져라 보는데, 나도 떠나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겼다.

요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책상에 앉았다. 마지막 기회였다. 글썽이며 ‘일본 워홀 준비’를 검색하고 또 한 번 ‘일본 워홀 막차 후기’를 검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