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가는 나라에서 잘삶을 외치다

나는 잘 살고 싶다. 그런데 2050년이 되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60세 이상이 될 국가에 살고 있다. 착실하게 소멸 중인 나라에서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내 삶을 가꾸기란 쉽지 않다.

국가는 언제 망할까? 수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신뢰를 잃었을 때가 아닐까? “이 나라는 투자 가치가 없다”는 말이 유행처럼 퍼지고, “이 나라에 남아 있으면 등신”이라는 조언이 식상해질 때쯤이면, 나라가 상폐할 것 같다는 위기감이 보름달처럼 커져 있을 것이다.

현재에 충실해야 행복하다고 하지만, 대부분 인간은 미래를 바라보며 산다. 3년 뒤 집값은 오를까? 5년 뒤엔 뭘 먹고 살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보다는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를 고민하며 삶의 방향을 잡는다. 그렇게 모인 시선이 결국 이 나라의 흥망을 가른다. 냉정하게 보면, 지금 대한민국은 부산엑스포 최종 PT 영상 같다. 쪽팔릴 정도로 희망이 안 보인다.

대한민국은 반자유, 반혁신 조직이다. 초등학교에도 ‘글로벌 인재를 키웁니다’라는 현수막을 붙여놓지만, 정작 글로벌 기업들의 진출은 막는다. Stripe, Twitch, Uber, Airbnb 같은 회사들이 이 시장을 포기하거나, 꽉 막힌 규제에 맞춰 반쪽짜리 서비스만 제공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2025년에도 타투가 불법인 나라에서 무슨 혁신을 논할 수 있을까? 축구 팬들이 아무리 반대해도 협회장은 여전히 정몽규다. 기득권 보호를 최우선으로 삼는 사회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에 한국을 떠났다.

표현의 자유는 또 어떤가. 얼굴이 알려졌다면 대통령 이름조차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농담을 하면서도 “이거 농담인 거 아시죠?”라고 덧붙여야 안심할 수 있는 사회다. 정치적 의견을 드러내면 공격을 받고, 조금이라도 주류에서 벗어나면 자살할 때까지 욕을 먹다 결국 희생양이 된다. 이 와중에 신기하게도 범죄를 저지른 정치인이나 재벌은 서민을 구하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삭발과 단식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울고불고하며 애원해도 소용없다. 나라를 말아먹는 할아버지들이 미래 세대를 위해 조금이라도 양보하길 바라는 건 헛된 희망이다. 오히려 이 사람들은 연금 지급의 책임을 젊은 세대에게 떠넘기고, 서울 부동산을 펌핑하며, 국내 주식시장은 카지노판으로 유지하고 있다. 투표하라고? 권력에 취한 자기도취자가 아니면 후보조차 되기 어렵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는 관심병자들만이 역겨운 ‘잠룡’ 타이틀을 얻는다.

다 포기하고 신세 한탄이나 하자고 부탁하는 건 아니다. 나라가 망해간다고 해서 나까지 같이 망가질 수는 없다. 원화가 휴지 조각이 되고, 집 밖에서 폭동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나를 지켜야 한다. 위기 상황에 대통령은 뒤도 안 돌아보고 벙커에 들어갈 텐데, 내가 왜 충성을 다해야 하는가.

일단 시야를 넓혀야 한다. 외화를 벌고 해외 투자를 늘리는 거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수익을 원이 아닌 달러로 얻을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4달라라도 벌어보겠다는 시도를 해봐야 억울함이 덜하다. 제도가 나를 도와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낫다. 2-30년 후만 해도 연금이나 복지가 존재할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망해가는 나라에서 개인은 더 단단해질 수 있다. 낡은 조직이 무너지는 동안, 독립적인 삶의 구조를 만드는 거다.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나와 내 주변을 돌보는 삶. 그것이 내가 평생을 바쳐 이루고 싶은 잘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