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석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 '이것은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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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있었던 Kenyon College 졸업 연설에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기본 설정(default setting)에서 벗어난 독립적 사고방식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설명한다.

고등학생 시절 우연히 이 연설을 듣게 된 이후 여러 차례 찾아 들을 정도로 좋아했기에 가장 와 닿았던 부분을 번역해 본다.

물고기 이야기

어린 물고기 두 마리와 어른 물고기가 만난다. 어른 물고기는 “애들아 오늘 물 상태가 어떠냐?” 물어보며 지나간다. 가던 길 가던 어린 물고기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묻는다.

“물이 대체 뭔데?”

이 이야기는 가장 뻔하고 중요한 사실이 알고 보면 가장 발견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전달한다.

자기중심적 사고

인생에서 겪는 모든 경험은 자기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믿음에 힘을 실어준다.

우리는 자기 위주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기중심적 사고는 하드웨어에 내장된 기본 설정과 같이 깊은 내면에 저장되어 있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경험의 중심에는 나 자신이 있다. 세상은 내 눈 앞, 뒤, 좌, 우에 있거나 내가 바라보는 TV나 모니터에 존재한다.

기본 설정

“정신은 훌륭한 하인이지만 끔찍한 주인이기도 하다”는 말이 있다. 어른들이 총으로 자살할 때 언제나 머리를 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꼭 “끔찍한 주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이렇게 자살하는 사람은 쏘기 전 이미 죽어 있던 것과 같다.

대학 졸업 20년 후 서서히 “인문학은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친다”라는 진부한 문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생각하는 법이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건 어떻게 내가 생각을 통제할 수 있을지에 관한 문제다. 어떤 부분에 집중하여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의미다.

차가 막히고 계산대 줄이 길 때면 생각할 여유가 생긴다. 만약 이때 의식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장 보러 가는 과정은 언제나 짜증 나고 비참할 수밖에 없다.

맞춰진 기본 설정에 따라 모든 상황이 나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 배고픔, 내 피곤함, 집에 가고 싶은 내 욕망. 다른 사람들은 그저 내 앞길을 막고 있는 거라 느껴진다.

분명한 건 사실 우리 모두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믿음

어른들의 삶에서 무신론이라는 건 없다 — 아무것도 숭배하지 않을 수는 없다. 모두가 믿음을 가지고 산다. 그저 무엇을 믿을지 선택할 뿐이다.

돈과 물건을 믿는다면 물질적 만족을 얻지 못하고 아름다움을 숭배한다면 자신이 추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모두가 이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 이미 많은 이야기의 근간이 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이러한 교훈을 실제로 일상에 적용하는 것이다.

자유

매일 사소한 방식으로 타인을 도우며 희생하는 선택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다.

무의식, 기본 설정, 생존 경쟁, 신경을 갉아먹는 욕망은 자유가 아니다.

교육은 지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교육이 전하는 진정한 가치는 단순한 의식에 있다. 보란 듯이 눈 앞에 펼쳐지는 현실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본질인지 알고 반복해서 속삭여야 한다.

“이것은 물이다.”

“이것은 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