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운이 좋았다면

어쩌면 내가 틀렸는지도 몰라. 분명 A가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왜 B가 나왔을까. 그때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직도 아파.

우리 학교에서는 늘 전교 1등이 하버드를 갔어. 하, 나랑 경쟁하던 그 쉐끼랑 같이 들었던 AP 심리학에서 A를 받았으면 내가 1등이었는데. 4학년 첫 학기 기말에서 심리학 선생이 나한테 B를 준 거야. 에세이의 첫 문장이 불분명하다고 했나. 내가 얼마나 억울했으면 친했던 역사 선생님한테 똑같은 에세이 보여줬다니까. 그 선생님은 이거 대학에서도 A 나올만한 수준이라고 했어.

내가 몇 번이고 심리 쌤 오피스를 찾아갔거든. 엉엉 울었어 아주. 우리 할아버지 죽었을 때보다 더 울었을걸. 그런데도 기어코 내 심리학 성적을 A-로 만들더라고. 팔짱 끼고 앉아서 듣다가 “성적은 이미 주어졌어”라고 조용히 말하는데 세상이 무너지더라. 눈물 다 닦고 오피스에서 나와서 뒤돌아보니까 그 선생이 퍼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 내 팔자가 전교 2등이니 그냥 받아들이라는 눈빛이랄까.

어쩌겠어. 시험 점수 딱 하나 차이로 우리의 운명이 갈렸지. 부잣집 아들은 하버드로, 변변치 않은 나는 버클리로. 이 정도면 무슨 우주의 법칙이려나 싶다. 그 하버드 붙은 놈의 졸업식 연설을 듣고 있는데 “가끔은 운도 좋아야 한다”고 말하더라. 10년이 지났는데도 그게 나한테 했던 말 같아. 내 마음은 졸업을 못 했나 보지 뭐. 그때 운이 좋았다면 지금 내 삶이 어땠을까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