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석

쓸모 있는 기술

우주선 이론

지구 멸망 하루 전 정부는 공식으로 발표한다. “새로운 행성을 향해 탈출하는 우주선에 딱 100명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모든 국민에게는 본인이 갖춘 능력을 어필할 수 있는 30초가 주어집니다.”

우선 문명을 건설하는 험난한 과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기술이 무엇일지 알아야 한다. 유명세나 재산은 아무 의미 없다. 농업, 공학, 의학, 과학, 예술. 어떻게든 현대 사회에 빼놓을 수 없는 기술과 나를 엮어야 한다.

흠.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지만 벌써 내 차례다. 나에게 주어진 30초 안에 뭐라도 말해야 한다.

“아… 네. 저는 작은 샌드위치 가게를 준비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빵이나 요리 가능합니다. 블로그에 글도 열심히 쓰고요. 마케팅, 사업 개발, 카피라이팅 업무 경험 있습니다.”

다음 날 정부는 나를 두고 지구를 떠난다.

열정 대신 기술

누구나 직업을 얻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반면에 어떤 기술이 정말 가치 있는지 심사숙고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할 때까지도 기술자가 아닌 소비자로 살았다.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마음에 품고 내 ‘열정’이 어딨나 여기저기 찔러보기 바빴다.

돌이켜보면 나는 ‘좋아하는 일’ 대신 ‘쓸모 있는 기술’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단순히 돈 많이 버는 직업을 선택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인생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내 일이 경제적 자유뿐 아니라 삶의 의미 또한 충족할 수 있는지 고민했어야 했다.

열정은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다.

쓸모 있는 기술

‘쓸모 있는 기술’을 정의할 수 있을까?

레너드 E. 리드 (Leonard E. Read)가 I, Pencil에서 말하듯 그 누구도 혼자서는 연필 한 자루 조차 만들 수 없는 세상이다. 마트나 쿠팡에서 완성품을 구매하는 건 너무나 쉽지만 제조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상에 익숙해지는 동안 수많은 기술적 지식이 마법처럼 생소해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쓸모 있는 기술’을 정의할 수는 없다. 기술은 세계화 및 세분화됐고, 많은 직업이 자동화로 인해 순식간에 사라진다. 정신없이 변화하는 시장에서 ‘쓸모 있는 기술’을 찾고 싶다면 여러 질문을 통해 스스로를 점검하는 수밖에 없다.

내 기술은…

  • 누구나 몇 달 안에 터득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가? ⇒ 업무가 매뉴얼 한 권으로 정리될 수 있다면 신기술로 대체될 확률이 높다.
  • 감정적, 사회적 경험을 필요로 하는가? => 기계나 코드가 따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적인 기술이어야 한다.
  • 내가 아닌 상사나 회사를 위해 쓰이는가? ⇒ 보조가 주요 임무라면 내 기술은 다른 사람의 생산성을 위해 존재한다.
  • 단 한 가지 직업에만 쓰이는가? ⇒ 쓸만한 기술이 있다면 지금 당장 망하거나 잘려도 다른 일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 실제로 많은 사람을 도우며 사회에 부가 가치를 만드는가? ⇒ 내가 일을 멈추면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전문가 대신 기술자

질문을 마치고도 내가 ‘쓸모 있는 기술’을 배우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면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불안할 이유가 없다. 다른 사람보다 배우는 속도가 느려도 상관없다. 매일 학교에 등교하듯 멈추지 않고 시간을 투자해서 꾸준히 성장하기만 하면 된다.

죽기 전 직업 때문에 후회할 여지를 남겨두고 싶지 않다. 10년 안에는 ‘우주선’에 한자리 차지할 만큼 뛰어난 기술자로 거듭나기로 마음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