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석

설득의 심리학, 사피엔스, 이건 그냥 티셔츠가 아니야

설득의 심리학

2020년 코로나19 발병 이후 일본 보건 전문가들은 시민들의 마스크 착용 빈도를 조사했다. 심각한 전염성이나 보호 효과 등 마스크 쓸 이유는 많았지만 ‘다른 사람이 쓰는 걸 봤기 때문에’라는 한 가지 이유만이 마스크 착용 빈도에 주요한 변화를 만들었다.

온라인 소개팅 4억 2100만 건을 조사한 대규모 연구에 따르면 파트너에 느끼는 호감을 가장 잘 예측한 건 다름 아닌 유사성이었다. 연구자들은 생각, 성격, 배경, 생활방식 등에 있어 더 비슷할수록 실제로 만날 가능성이 월등히 높다는 걸 발견했다.

진화론을 믿도록 설득하는 과정에 논리적인 설명은 큰 도움이 안 된다. 사람들은 감정적이며 때로는 종교적인 사상, 믿음, 가치관에 기반하여 진화론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조지 클루니가 진화론에 관한 책에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고 말하자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을 더 쉽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러한 패턴은 피실험자의 나이, 성별, 종교와 관련 없이 발생했으며 꼭 조지 클루니가 아니더라도 엠마 왓슨 같은 유명인을 이용한 연구에도 똑같이 발견됐다.

광고에 있는 시곗바늘은 웃는 입 모양을 만든다. 이러한 ‘스마일’이 사람들의 기분뿐 아니라 구매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걸 아는 시계 회사들은 언제나 광고에 ‘스마일’ 모양을 보여준다.


설득의 심리학은 보답, 호감, 사회적 증명, 권한, 희소성, 일관성, 통일성과 같은 요소들이 구매, 기부, 투표, 양보, 찬성과 같은 결정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나는 공짜로 무언가를 받았을 때 어떻게든 보답하려고 하고,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게 살고자 안간힘을 쓰며, 당근마켓 매너온도나 에어비앤비 별점 같은 ‘점수’에 은근 신경 쓴다. 잘 모르는 과학이나 기술 분야가 궁금하면 팔로워 수가 많은 전문가의 말에 의지하고, 국뽕을 싫어하지만 올림픽을 볼 때면 ‘우리나라’라는 말로 만나보지도 못한 선수들과 가족 같은 사이가 되기도 한다.

인간은 빠르게 결정할 때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간식 서랍 열리는 소리에 뛰쳐나오는 우리 집 고양이처럼 무의식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사실상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누군가에게 혹은 광고로 인해 설득당했을 때 잠깐 멈추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잠깐, 내가 어쩌다 이런 결론을 냈지?

사피엔스

개미와 벌은 대규모로 협력해도 가까운 사이끼리 그리고 정해진 방식대로만 함께 일한다. 늑대와 침팬지는 개미보다 훨씬 더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지만, 소수의 친밀한 관계가 아니면 서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에 반해 사피엔스는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 융통성 있게 협력한다. 이 차이로 인해 사피엔스가 세계를 지배할 때 개미는 남은 음식을 먹고, 침팬지는 동물원과 연구실에 갇혀있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임계점을 넘어 수만 명의 주민이 사는 도시와 제국을 세울 수 있었을까? 비법은 아마도 허구(fiction)의 등장이었을 것이다. 신화를 함께 믿는다면 낯선 사람들끼리도 성공적으로 협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지 혁명(Cognitive Revolution)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현실에 살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강, 나무, 사자를 다른 한편으로는 신, 국가, 기업을 두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상이 가능케 한 현실은 더욱 강력해졌고, 이제는 미국이나 구글과 같은 허구의 단체들이 강, 나무, 사자의 생존을 결정한다.

약 9,000년 전 아르헨티나의 수렵채집인들은 ‘손 동굴’에 손도장을 찍었다. 위 사진을 보다 보면 죽은 영혼의 손들이 바위 밖을 향해 뻗어 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장 유명하고 감동적인 유물 중 하나이지만, 아무도 이 손도장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는 알지 못한다.


인간만이 상상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고 공유한다. 기업이나 국가는 상상으로 굳어져 사람과 마찬가지로 실존하게 되고, 이로 인해 우리는 달러가 가치 있으며 국경은 절대적이라 믿게 된다.

상상의 공동체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제도 그리고 법은 단순한 신념이 아닌 신성한 규칙으로 취급되며 어길 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처벌을 받기도 한다. 인간을 통제하는 모든 규칙을 무시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다만 모든 법, 제도, 공동체는 인간의 상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얼마든지 보완되거나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왜 계좌에 찍힌 금액이 실존한다고 믿는지 그리고 왜 자신을 한국인이라 소개하는지 한 번쯤은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

이건 그냥 티셔츠가 아니야

우리는 아직도 우리 회사가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른다. 그저 여러 숫자를 조합하여 번호 자물쇠가 열릴 때까지 넣어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 브랜드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익을 내며 성장하고 있다. 15년 세월 간 험한 스트릿 패션 시장에서 The Hundreds는 어떻게 건재할 수 있었을까? 내 이론은 간단하다. The Hundreds는 결코 옷만 다루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나 커뮤니티를 위하며 스트리트웨어의 순수한 정신을 추구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단순하게 보자면 스트리트웨어는 하나의 태도를 담고 있는 상품이다.

우리의 목표는 모든 사람을 고객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단 한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다. 일대일 만남에서 끼치는 영향력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이 가진 열정은 유행을 만들며 공동체를 움직인다.

창업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업계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해요. 왜냐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그 인간들을 빡치게 하는 것이 진짜 해야 할 일이거든요"라고 대답한다.


살아남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굳건한 태도를 정립하고 수호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혀를 차며 깎아내리는 건 문제가 아니다. 단 한 명이라도 공감하고 좋아한다면 그걸로 브랜드가 존재할 이유는 충분하다.

속임수는 진정성을 만들지 못한다. 생생정보통이나 달인에 출연한다고 더 이상 ‘진짜 좋은 상품’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지속 가능한 브랜드는 권위나 인정이 아닌 감동을 목표로 전진한다.

한 사람의 리뷰, 글, 영상이 그 어떤 광고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대에서 집착해야 할 건 ‘힙함’이 아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객 한 사람의 만족이다.

P.S. 1956년도만 해도 5MB 드라이브 옮기는 게 이렇게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