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야기-무대
나-이야기-무대를 통해 독백 무대를 마친 후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연기라는 건 그렇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영역처럼 느껴진다. 연극은 더더욱 그렇다.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예술가들만이 할 수 있는 날것의 자기표현. 그래서 더 해보고 싶었다. 늘 가슴속에 품고 사는 덩어리 같은 감정들. 그것들을 사람들 앞에서 꺼내 보여주고 싶었다.
‘나-이야기-무대’에서 나는 어떤 무대를 만들 수 있을까? 혼자 고민에 빠질 때면, 이상하게도 무대에 서서 울부짖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평소에 눈물이 거의 없는 무덤덤한 사람이라서 그랬던 걸까. “나 슬퍼요. 나 힘들어요. 나도 함께 울고 싶어요.”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동료들과 함께 움직임을 연습하고, 연기가 무엇인지 고민하면서 점점 더 느꼈다. 연기는 어렵다. 무대만 서면 갑자기 나라는 존재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설득력 있는 연기를 하려면, 자연스럽게 걷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나는 말할 때 손을 어떻게 움직이지? 화가 나면 어떤 표정을 짓지?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정이었다.
무대에서 보여줄 독백의 초고를 써야 할 때, 이상하게도 2년 전 세상을 떠난 아빠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매일 반복하는 후회. 그러니까 아빠의 마지막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가장 무겁게 남아서였을지도 모른다.
초고를 쓰고 나서는 정말 이걸로 무대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내 마음속 얼어붙은 감정을 와장창 깨고, 사람들 앞에 꺼내놓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나름대로 몸을 풀고 연습을 해도 긴장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무대 당일. 마지막 리허설에서도 나는 얼어 있었다. 마치 죽은 아빠를 무대에 다시 불러오는 일이 금기인 것처럼. 대사를 읊었지만, 스스로 만든 상황에 몰입하지 못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 나는 아빠가 객석에 와 있다고 상상했다. 내가 독백극을 한다고 말했으면 분명 와줬을 아빠. 그 모습을 떠올리니 시작도 전에 감정이 복받쳤다.
대기실을 나와 무대에 서자 관객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몰입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꽤 편안했다. 대사를 까먹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사라질 무렵, 소품으로 준비한 침대에 야위었던 아빠가 누워 있는 것처럼 보여 눈물이 났다. 무대에서 내가 과연 울 수 있을까 싶었는데, 눈물이 너무 많이 나 억지로 멈춰야 할 정도였다.
무대를 마치고 대기실에 돌아와 쪼그려 앉았다. 내 무대를 아빠가 봤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 대사가 사람들에게 들리긴 했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자기이해와 자기표현. 이 두 가지는 뗄래야 뗄 수 없다. 자기표현을 해야 자기이해가 가능하고, 자기이해를 원해야 자기표현이 가능하다. 지난 10주간 내 이야기를 쓰고, 외우고, 무대에 서서 외쳐보니 더 나은 인간이 된 것만 같았다. 뭉클하고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나는 무대에서 빛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연기자로서 잘해내고 싶다기보다는, 그저 감정을 꺼내는 데 충실하고 싶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