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석

결혼기념일

2020년 10월 10일 결혼식 이후 1년이 지났다.

1년간 은비와 함께 회사를 그만두고 가게를 차리기로 했고, 이사만 2번을 했으며, 서울을 떠나 제주도로 집을 옮겼다.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결혼이라는 말과 반대로 우리는 부부가 되고 진짜 원하는 삶에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하고 살다 보면 비슷한 질문을 듣게 된다. 결혼을 왜 했는지, 싸우지는 않는지. 단순한 질문이지만 답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그만큼 은비와의 관계를 돌이켜보는 시간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명상과 같다.

결혼은 나에게 본능처럼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갑자기 벼락 맞은 듯 깨달은 것도 아니고, 진중한 토론 끝에 내린 선택도 아니었다. ‘그냥’ 알았다. 일주일에 6번씩 만날 거면 얼른 부부가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인 것 같았다.

웨딩 플래너는 없었지만, 결혼식 준비 과정은 어렵지 않았다. 저렴하고 효율적이며 무엇보다 가능하면 직접 만드는 행사를 준비하다 보니 스트레스보다는 즐거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식장은 단 한 곳만 가보고 계약했고, 드레스는 대여했으며, 양복은 집 앞에서 맞췄다. 사진 작가님은 인스타에서 찾았고, 청첩장은 노션으로 직접 만들었다.

결혼식과 같이 큰일로 인한 갈등은 없었지만 사소한 문제로 은비에게 삐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기분 나쁠 때 은비에게 화를 돌리기도 하고, 원하는 방식을 강요하기도 했다.

‘인간은 관계를 통해 나 자신을 알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감정에 휩쓸려 실수를 반복할 때 여태까지 잘 묻어놨던 내면의 부족함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물론 알아차린다고 해서 바로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소설 싯다르타에서 싯다르타는 뱃사공으로 일하며 듣는 법을 터득한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처럼 탑승객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능력 덕분에 현자라 불리기도 한다.

고요한 강과 같이 경청한다는 건 멍하니 듣고 흘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상대방의 고충과 관점을 전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가 바로 싯다르타가 실천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 같은 경우 듣는 게 아니라 듣는 척을 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뇌가 중요한 말 그리고 하찮은 말을 구분하여 자동 처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이 문제는 화가 났을 때 더 심해진다. 듣지도 않을뿐더러 감정에 침수되어 수그러들 때까지 말을 하려 들지도 않는다.

‘부부가 싸우기도 하는 거지’라는 말에 마냥 고개를 끄덕이고 싶지는 않다. 나는 현명한 뱃사공처럼 귀를 열고, 화가 나도 명쾌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실상 나에게 필요한 건 책도 아니고 이 글도 아니다. 꾸준한 실천이야말로 내가 바라는 진짜 변화다.

P.S. 은비도 나에 관한 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