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석

이응노 - 창작하는 정신

예술가

그리지 못한다는 것은 나로서 죽음과도 같다.‌‌‌‌ 이응노

창작이 어렵게만 느껴질 때 이응노 작가가 만든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작가가 동베를린 사태에 휘말려 2년 반가량 억울한 징역살이를 하던 시절 제작한 작품들은 감동을 주기까지 했다.

누군가에 대하여 알고 싶다면 ‘어떤 말을 했는가’보다 ‘어떤 작품을 만들었는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응노 작가는 내가 본 그 어떤 사람보다도 창작을 사랑하는 진정한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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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 중 나무 도시락, 종이, 밥풀, 고추장, 간장 등을 이용해 만든 작품들.

옥중에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그림쟁이인 내가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부터는 간장을 잉크 대신으로 화장지에 데생을 하기 시작했지요. 또 밥알을 매일 조금씩 아꼈다가 헌 신문지에 개어서 조각품도 만들기 시작했어요. 이응노

신체의 자유가 박탈된 환경에서도 밥풀과 신문지로 조각품을 완성하는 사람. 이응노는 창작하는 정신에 중독된 예술가이자 혁명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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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교도소에 가장 춥고 괴롭던 날” 그린 자화상.

혁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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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민주화 운동에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 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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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작가가 돌, 모래, 솜을 이용하여 만든 작품들.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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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란, 벽에 거는 장식품으로만 그쳐서는 안 돼요. 사회의 모습, 순수한 인간에 대한 애정…, 이런 피끓는 발언이 없어서는 안 되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그림에 생명이 깃들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화가의 무기는 그림입니다. 예부터 예술가들은 권력자에게 봉사하고 권력의 노예가 되어 왔지요. 그러나 현대의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굳게 지키며 민중들 편에 서야 합니다 …

옛날 사람의 문자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따라서 흉내내기만 한다면 그건 단지 모방에 지나지 않아요. 만약 혁명가라면 새로운 해석을 통해 창조적인 자기 것을 만들어 표현하겠지요 … 그렇지요, 고전의 기술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고전으로부터 무엇을 끌어낼 것인가 하는 정신과 사상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응노

이응노 작가는 어떻게든 틀에서 벗어나 자기 것을 만들었다 (문자 추상적 작품, 서양인의 시선으로 그린 수묵화, 한지로 만든 콜라주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말하는 혁명가는 창작을 멈추지 않는다. 부와 권력에 휘둘리지 않은 상태로 고유한 철학을 표현하고, 모방이 아닌 창조를 목표로 삼아 전진한다. 혁명가에게 표면적인 아름다움은 부가적인 요소일 뿐이다.

이응노 작가가 말하는 창작하는 정신은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소비가 아닌 창작을 추구하는 삶을 원한다는 말을 뱉으면서도 편안함과 모방에 기대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