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러스트도 잡숴라

제주 최고의 피자집, 도우보이에서 피자를 배 터지게 먹었다. 그러곤 옆 테이블을 보는데, 접시 위에 크러스트만 수북이 쌓여 있는 광경을 봐버렸다. 당연히 버려야 하는 것처럼 널브러져 있는 빵을 보는데, 내가 다 속상했다.

피자는 결국 ‘빵’이다. 좋은 피자는 좋은 반죽에서 시작되고, 좋은 반죽은 좋은 밀가루와 긴 시간의 발효, 그리고 정성이 있어야 나온다. 먹어보면 안다. 도우보이처럼 제대로 반죽한 피자는 식감, 향, 맛, 어느 하나 빠짐없이 훌륭한 빵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크러스트도 피자의 일부다. 어쩌면 가장 맛있는 부분일지도 모른다. 빵을 시켜놓고 빵을 안 먹는다는 게, 솔직히 좀 이해가 안 된다.

물론 크러스트가 ‘맨빵’ 같아서 싫을 수도 있다. 그런데 잘 발효한 반죽으로 구운 피자는, 크러스트가 맛없을 수가 없다. 오히려 그 고소하고 쫄깃한 끝자락을 좋아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빵이란 게 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정성 들여 구운 크러스트가 접시에 남겨진 걸 보면 답답할 수밖에 없다. 빵은 5,000년, 어쩌면 1만 년 가까이 이어져 온 발효 음식이다. 그런데 불과 100여 년 전부터, 공장에서 상업용 이스트로 빠르게 부풀려 후다닥 구워내는 말하자면 ‘포켓몬빵’ 같은 빵이 등장했다.

결국 이건 빵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다. 소시지가 들어 있어야 빵인가? 생크림이 흘러넘쳐야 빵인가? 초콜릿이 씹혀야 빵인가? 아니다. 밀가루, 물, 소금, 효모만으로 정성껏 만든 빵이야말로 진짜 빵이다.

버터나 설탕 없이도 씹을수록 복잡한 풍미가 느껴지는 빵. 건강과 맛, 둘 다 챙기는 빵. 그런 빵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농부도, 제분소도, 제빵사도 “진짜 좋은 빵이 뭘까?”를 고민하고 더 나은 빵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부탁이다. 제대로 반죽한 피자를 시켰으면…
크러스트도 잡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