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13살. 전주. 운 나쁘게 배정받아 입학한 중학교가 죽도록 싫었다. 다른 친구들은 집 앞 학교에 다니는데. 홀로 스쿨버스타고 산골 학교에 가야 한다는 게 비참하게만 느껴졌다.

새로운 환경에서 친구 한 명 만들지 못했다. 눈만 마주쳐도 욕하는 축구부 애들. 얼굴이 퍼렇게 부풀 만큼 맞아도 선생님에게 넘어졌다고 거짓말하는 애. 두려웠다. 학교에 들어갈 때면 고개를 내리깔고 바닥만 보며 걸었다. 하루를 견뎌내기가 버거웠지만 해결책은 없었다. 그저 매일 같이 ‘학교 가기 싫다’ 울며 부모에게 화풀이를 반복했다.

그러던 와중 엄마는 우연히 신문에서 청소년 중국 유학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삶을 포기한 듯 마음을 닫고 있는 아들에게 엄마는 물었다. “중국 유학 가보는 건 어때?” 난 좋다고 말했다. 탈출구가 있다면 어디든 괜찮았다.

급하게 한 달간 중식당 사장님에게 중국어를 배운 후 하이안으로 넘어갔다. 남경 공항에서 내려 버스 타고 4시간을 더 갔다. 맥도날드조차 없는. 물에서 쇠 맛이 나고, 저녁에 박쥐가 날아다니는 시골이었다. 언어, 문화, 음식, 냄새. 모든 것이 낯설었다. 첫날 밤, 방을 함께 썼던 동생은 가족과 통화하더니 엉엉 울었다. 울음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지만 난 멀쩡했다. 춥고 배고팠지만, 마음은 담담했다.

룸메이트 동생을 제외하면 난 한국인 학생 중 가장 어렸다. 한두 살, 해 봤자 네 살 차이었지만 나에게 형들은 어른처럼 느껴졌다. 도망쳐 온 타지에서 목적 없이 지내던 나에게 기댈 수 있는 건 오직 형들밖에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형들은 운동장 뒤편 풀숲에 들어가 담배를 피웠다. 연기를 내뿜는 형들을 멀리서 보고 있으면 외로워졌다. 나도 같이 저 풀숲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함께 웃을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내 삶이 나아질 것만 같았다.

“민석이 절대 담배 주지 마라.” 큰형이 신신당부했지만 결국 난 형들과 함께 매일 같이 담배를 피우게 됐다. 담배를 구할 수 없는 날에는 바닥에 떨어진 꽁초를 주워 폈다. 어두컴컴한 숲속에 몰래 모여 담배를 꺼내고 불을 붙이는 반항이 내 삶의 전부인 것 같았다.

방학이 찾아오고 전주에 돌아왔다. “민석아 너 담배피니?” 여행가방 구석구석 찌들어있는 냄새를 맡고 엄마는 물었다. “왜요? 아닌데요.” 심장이 덜컹했지만 무뚝뚝한 표정으로 얼버무렸다. 날 가만히 쳐다보던 엄마는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전주에 형들은 없었다. 초등학생 시절 친했던 친구를 만나면 어색한 인사만 나눴다. “민석아 너 외로워?” 내 연락을 피하던 동네 친구는 굳어버린 내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외로웠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도망쳤다. 그 후 이 친구에게 다시는 연락하지 못했다.

무서웠다. ‘중국어로 자기소개’ 시키는 어른들이. 내 마음을 몰라주는 친구들이.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 내가 얼마나 하찮은지 알아차릴 것만 같기에.

중국에서 몰래 가져온 담배를 주머니에 넣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골프 연습장 주차장에 갔다. 아무도 보지 못할 곳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담뱃갑을 꺼내 멍하니 쳐다봤다. 별로 피고 싶지도 않았지만,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연기를 서너 번 내뱉는데 입안 가득 탄 맛이 느껴졌다. 반쯤 타다 만 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일어났다. 그렇게 한참 휑한 콘크리트 바닥에 홀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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