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는 어떻게 정하는가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타인이 쫓는 목표를 모방하여 결정을 내린다.
르네 지라르의 모방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욕망은 제3자를 따라 하면서 발생하며 인간은 이러한 동물적 본능 탓에 치열한 경쟁을 벗어나지 못한다.1
모방이론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무언가를 순수하게 원하는 경험은 흔치 않다. 가정에서 시작해 학교 그리고 회사에서 관심, 성적, 승진, 연봉을 두고 경쟁했던 시간이 삶의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경쟁이 필연이라면 진로를 정하는 논리는 트로피를 건질만 한 대회를 선택하는 과정과 같아야 한다. 어떻게든 상대방을 끌어내리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영역을 아는 것이 곧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터 틸은 제로 투 원에서 “경쟁은 실패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2 그리고 독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작은 영역에서 독점을 노리는 것”이라 강조한다. 틸이 예시로 사용하는 항공 회사와 구글의 수익 구조 차이를 보면 경쟁을 왜 피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미국 항공산업은 매년 160조 매출을 기록하지만 항공사는 늘 결핍에 시달린다. 미국 내에만 항공사 58개가 가격 경쟁에 몰두하기 때문에 매출의 0.2%가량밖에 이익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3 하지만 독자적인 시장에서 독점을 이루어낸 구글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구글은 2012년 50조 매출을 기록했고, 항공산업보다 100배 더 높은 20%가량을 수익으로 전환했다.
개개인에게 항공사와 구글 중 원하는 모델을 고르라면 대부분 구글을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삶에서 경쟁을 피하고 독점을 노리기 위해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더 높은 점수 그리고 더 나은 이력서를 위한 노하우가 아닌 고유 지식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배움
배움을 평생 추구하지 않는다면 멀리 가는 인생을 이룰 수 없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끝없이 높아지고 청년 일자리 문제 뉴스가 넘쳐나는데 어떻게 경쟁을 피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인터넷만 있으면 나만의 길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 팩트다. 빌 걸리가 말하듯 “더 이상 지식을 쌓지 못한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매일 한 시간 이상 독서하는 나발 라비칸트는 “어떠한 영역이든 커리어를 쌓는데 최소 10년이 걸린다”라고 말한다. 90세가 넘은 찰리 멍거와 워런 버핏은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 그리고 대화에 투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새로운 지식이 기존 이념에 변화를 몰고 오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체되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가 아닌 습관적 배움을 중시한다.
반대로 승자와 패자를 나누기 위해 존재하는 경쟁은 진정한 발전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예를 들어 병원장은 가장 뛰어난 의사가 아니고 총장은 가장 뛰어난 학자가 아니다. 창의적인 정책이 정치인 당선을 돕는 것 또한 아니다. 배움이 아닌 경쟁을 선택했다면 지위를 뽐내고 권력을 휘두를 수는 있어도 결코 삶의 모범이 되지 못한다.4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경쟁이 아닌 배움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한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좋아하는 영역이 있다면 꽉 붙잡은 상태로 끝없이 배워야 한다. 백종원이 음식을 좋아하는 만큼, 조성진이 클래식을 사랑하는 만큼 빠질 수만 있다면 배움과 일은 하나가 될 수 있다.
독점
좋아하는 걸 찾기보다는 굉장히 멋대가리 없지만 싫어하는 걸 제거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건 어떨까요? 왜냐하면,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게 훨씬 분명하게 느낌이 오거든요.
디자이너 잭 부쳐가 운영하는 Visualize Value는 명언을 심플한 그래픽이나 영상으로 표현한다. 부쳐는 회사를 나오고 창업 실패를 겪은 이후 Visualize Value를 만들었고, 꾸준히 독특한 디자인을 만들고 인터넷에 배포한 결과 18개월 만에 연 100만 불 이상 가치를 만들었다.5
우리는 유명한 짤 하나가 6억에 팔리고, 트윗이 25억에 팔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블로그가 책보다, 유튜브 영상이 영화보다 가치가 낮다고 볼 수 없는 세상이다. 아무리 작은 틈새 지식이라 해도 인터넷을 레버리지로 사용한다면 나만의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 첫 번째 영상, 글, 팟캐스트에서 멈추지 않고 끝까지만 가면 된다.
고유한 제품 그리고 꾸준함으로 경쟁에서 벗어난 예시로는 레시피 영상에 직접 만든 노래를 넣는 유튜버 과나도 있다.6 이들은 ‘대회 우승’이나 ‘수석 졸업’을 내세우지 않는다. 사회가 만들어둔 격투장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작품을 내놓는 데 최선을 다할 뿐이다.
물론 새로운 영역에서 성과를 이루어 냈다고 경쟁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스트롯 이후 생긴 수많은 트로트 프로그램이 시청률까지 똑같이 흉내 낼 수는 없다. 독창적인 시장에서 이루어낸 독점은 쉽게 빼앗기지 않는다.
용기
인류 역사에 위험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았던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내용을 토대로 정리하면 진로를 결정하는 과정은 3단계로 나뉜다:
경쟁을 부추기는 선택은 제거한다.
평생 배워도 질리지 않을 지식 영역을 찾는다.
독점을 이루어내기 위한 장기전에 도입한다.
하지만 이 3단계를 밟기 위해서는 전통적 사회 구조와 부정적 인식, 즉 ‘그렇게 해서 뭐 먹고 살래’를 무시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의 선택에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헤지펀드에서 부사장으로 일하던 30살의 제프 베조스는 후회 최소화 기법(Regret Minimization Framework)을 사용하여 아마존 창업에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거라 믿고 내렸던 한 선택은 아마존을 만들었다.
후회 최소화 기법은 단순하지만 꽤 유용하다:
먼 미래에서 있는 나를 상상한다.
지금 고민 중인 결정으로 돌아온다.
“미래에 나는 후회하지 않을까?” 물어본다.
답이 나오면 그대로 선택을 내린다.
베조스처럼 실패가 아닌 후회가 두려운 사람이라면 과감하게 모험을 선택한다. 반대로 실패와 후회 둘 다 두려워 경쟁을 선택한다면 결국 제로섬 게임에 빠지게 된다.
진로
당신은 특수한 형태를 가진 퍼즐 조각이다. 그리고 오래된 방식처럼 자기가 가진 모양을 바꾸어 존재하는 공백에 들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자기 자신 그리고 세상을 위해 더 좋은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내 주위에 새로운 퍼즐을 만드는 것이다.
피터 틸은 면접자에게 “소수만 동의하는 진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라 묻는다. 대부분 대중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사느라 인기 없는 의견을 제시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틸의 질문에 당장 답변을 못 한다고 진로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시간을 두고 나를 대표하는 가치와 기준을 알아보면 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거 해’라는 말은 쉽지만, 해결책이 되지는 못한다. 나라는 사람은 어릴 적부터 무엇을 좋아했고 언제 행복과 보람을 느꼈으며 지인은 나를 어떻게 보는지 살펴볼 시간이 있어야 후회 없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 반대로 특정 회사나 직업에 나를 맞추다 보면 자주적인 삶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된다.
지라르가 말하듯 인간이 모방하는 생명체라면 내가 누구를 따라갈지 결정하면 된다. 주변에 존경할만한 사람이 없다면 인터넷이나 책에서 찾으면 된다. 나 같은 경우 온라인 글쓰기를 통해 독자적인 자산을 만든 사람을 구독한다. 그리고 이들이 나아간 길을 관찰하며 따라간다.
앞으로 자유를 아끼는 많은 사람은 경쟁을 피해 배움을 추구하고 독점을 이루어낼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그 무리에 이 글을 읽은 당신이 나와 함께 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또한, 지라르에 의하면 인간은 예수님과 같은 희생양을 만들어 위기를 모면했다. 더 자세히 이해하려면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 참고가 필요하다. ↩︎
80년대 대학생 시절 틸은 지라르의 수업과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정도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
항공사가 마주하는 문제는 음식점에도 발생한다. 비행기 티켓만큼 가격에는 덜 민감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치킨집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
내가 말하는 모범적 삶은 행복, 평화, 자유, 건강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억지로 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아픈 곳 없이 활동 할 수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