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지 스리니바산 - 미디어, 기술, 영생
팀 페리스 (Tim Ferriss)와 발라지 스리니바산 (Balaji Srinivasan)이 나눈 대화 그리고 Balaji가 쓴 글을 보고 인상 깊었던 부분을 번역했다.
미디어 (2021. 03. 24)
코드가 기계를 만들듯, 미디어는 사람을 만든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기자는 대화를 마음대로 수정하고 배급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인터뷰에 참여하는 사람은 기사를 편집하고 유통하는 과정에 전혀 관여할 수 없다.
이러한 불균형은 언론 개혁이 아닌 근본적인 탈중앙화로 해결할 수 있다. 기업형 언론과 반대로 모두가 기자가 되는 시민 언론(citizen journalism)은 한 가지 예시다.
개인은 넓은 유통망을 가진 미디어 회사와 무의미한 다툼을 가지는 대신 인터넷을 통해 유통 채널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클라우드 폭발 (2021. 03. 24)
2020년대에 특정 국가, 아마도 미국에서 다양한 이유로 인해 클라우드가 폭발할 거로 예측한다.
소니가 해킹당했을 때는 예고편과 같다. 중장기적으로 실제 이름과 소득 이름을 구분하는 ‘가명 경제’가 필요할 날이 올 거로 생각한다.
클라우드가 폭발한다면 위키리크스 방식대로 갑자기 (모든 개인 정보를) 검색할 수 있게 된다. 불이 나고 전기가 나가는 것과는 다르다. 신뢰가 사라지고,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으로 인한 수많은 사회적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2025년, 늦어도 2030년에는 줌(zoom)에서 ‘샌프란시스코 배경 사진’을 넘어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오디오와 비디오 필터가 생길 거로 예상한다. 그리고 이러한 필터는 일상에서 옷과 같은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가명 시대’는 차별 그리고 캔슬 문화를 멈추게 한다. 서로 무장 해제함으로써 ‘캔슬’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오로지 상대방이 하는 말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차별은 불가능해진다. 상대방의 특징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커뮤니티 (2013. 11. 22)
기술의 미래는 위치 기반 앱이 아니다. 기술은 위치를 전적으로 무의미하게 만들 것이다.
실시간으로 수천 킬로 떨어진 사람들과 일하고 떠드는 수백만 명은 이미 클라우드로 이주한 상태다.
인터넷으로 만난 100명이 한 달간 혹은 1,000명이 1년간 같은 도시에 산다고 할 때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규모가 10,000명 그리고 100,000명 이상으로 커지고 거주 기간 또한 계속 늘어난다면 클라우드 타운이나 도시 혹은 클라우드 국가까지 등장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걸 처리할 수 있기에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 클라우드에서 자신과 맞는 커뮤니티를 찾는다면 바로 이동하여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가 ‘뒤바뀐 디아스포라’를 향해 가고 있다는 걸 말한다. 종합해 보면 세계적으로 퍼져있던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서로를 발견한 이후 실제로도 뭉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조상들은 기회를 찾아 미국에 왔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대륙은 어디에도 없다. 국가가 모든 땅을 점령하고 있고, 국경은 닫힌 지 오래다.
새로운 커뮤니티는 래리 페이지가 원하는 실험 단지일 수도, 피터 틸이 말하는 수상 도시일 수도, 일론 머스크가 목표하는 8만 명 규모 화성 식민지화일 수도 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클라우드는 꾸준히 성장할 것이고, 덕분에 새로운 형태의 국가는 실현 가능해질 것이다.
기술과 영생
많은 사람이 인류가 세상에 주는 영향이 조금은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기후 변화를 초래하고 있기에 아이를 가지지 말아야 하며 최대한 작은 공간을 차지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이 만드는 기술 또한 끔찍하기에 어떻게든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태도는 자연을 이상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생긴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길들여진 자연’을 사랑한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만약 기술의 주된 목적이 결핍을 없애는 것이라면, 궁극적 목적은 죽음을 없애는 것이다.
사망은 결핍의 근원이다. 만약 우리가 무한한 시간을 가진다면 더 빠르고 말고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속도가 가치 있는 이유는 시간이 소중하기 때문이고 시간이 소중한 까닭은 삶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기술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까?
발라지는 세상을 기술로 이해하고 예측하며 바꾸려는 사람이다.
뻔하지 않은 시각이 영감과 재미를 주기는 하지만 기술로 인한 근본적 변화가 필연적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탈중앙화된 사회에서 무한한 삶을 사는 것이 이상적일 수는 있겠지만 그 지점으로 향하는 과정이 한 사람이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단조로울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기도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수명이 급격하게 늘어난다고 생각했을 때 식량 부족이나 기후 변화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인간이 허무주의에 빠지지는 않을까? 근본적 가치가 무너질 때 어떠한 혼란이 일어날지 알 방법은 없다.
확실한 건 내 의사와 상관없이 기술은 분명 앞으로 나아간다. 이미 원숭이가 상상만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시대다. 이런 세상에서 나는 수동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인지, 힘껏 변화를 만들어 볼 것인지 정해야 할 것 같다.
어찌 됐든 내 문제만큼은 내가 해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