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사니까 어떤가요?
이번 주말 가게 문을 닫고 친구 결혼식을 위해 서울에 다녀왔다. 그러고 보니 한 달 새 서울사람 결혼식만 두 번째다. 김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복잡함과 편리함이 동시에 훅 느껴졌다. 정신 없이 환승하고,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결혼식장에 무사히 도착하니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제주로 이주한 지 2년 만에 나도 제주 사람 다 된마씸 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다.
결혼식장에는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이 많았는데, 소소한 안부를 나누다 보니 줄곧 같은 질문을 듣게 됐다. “제주에 사니까 어때요?” 평범한 질문일 수 있지만 내 머릿속은 명탐정 코난이 범인을 찾는 듯 분주했다. 난 제주가 좋은 걸까? 싫은 걸까? 머리를 긁적이다 “그러게요… 너무 좋죠.“라며 얼버무렸다.
제주살이에 대한 내 생각은 꽤 복잡하다.
- 제주도 하면 자연을 기대하지만, 시내에 사는 나는 현무암이 아닌 자동차에 둘러싸여 산다. 일상에 오션뷰나 오름뷰는 없다. 주차 공간은 언제나 부족하고 인도가 없는 골목이 많아 차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걷다 보면 오히려 서울이 제주보다 훨씬 더 걷기 좋은 도시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 제주도민은 거창한 문화생활을 기대하지 않는다. 더현대, 성수동, 브루노 마스는 없다. 그렇다고 모든 제주도민이 주말마다 등산하고 서핑하는 건 아니다. 나 역시 넷플릭스와 유튜브 콘텐츠를 보면서 쉰다. 인터넷은 공평하다. 서울에서 제주로 넘어온 후 오프라인 일상은 달라졌지만 온라인 생활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 당연한 말이지만 제주는 서울에 비해 사람이 정말 없다. 제주시청처럼 알려진 번화가나 한라산 정상이 아니면 대부분 한산하다. 가게에 앉아 텅 빈 거리를 보면서 영화 28일 후를 떠올릴 때가 있다. 시야에 담기는 사람 수가 적으니 비교 대상 없이 멋대로 맛대로 살기 좋은 환경이다.
‘제주에 사니까 어떤가요?‘라는 질문에는 옅은 기대가 깔려있다. ‘제주 생활이 기대했던 것만큼 좋은가요?’ ‘서울에서 겪었던 문제가 제주에 가니 해결됐나요?’ 완전 만족한다거나, 사실 실망했다는 명쾌한 답을 원할 수 있지만, 나의 제주살이를 좋다 나쁘다로 단순하게 정리하기는 어렵다.
내가 서울을 떠나 제주에서 수염을 기르며 사는 모습이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강남 한복판에 살아도 한적한 마을에 집 지어 사는 마음가짐을 가꿀 수 있고, 수탉 소리에 아침을 맞이하는 시골에 살아도 테헤란로 직장인처럼 숨가쁘게 살 수 있다. 결국 이루고 싶은 삶의 형태는 우리나라 어디에 살든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3년차 제주 도민으로서 내가 얻은 결론이다.